예술작품과 토이를 넘나드는 Z세대의 핫한 취향, 아트토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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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초 토베이(Tobey) 작가는 새로운 아트토이 시리즈 ‘안식(REST)’의 작품 이미지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렸다. 얼마 뒤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다이렉트 메시지(DM)가 왔다. 발신자는 2018년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로 일약 하이틴 스타로 떠오른 영화배우 노아 센티네오였다. 창작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작품 사진을 올리고 갤러리나 대행사의 도움 없이 작가와 구매자가 메신저로 직접 소통하며 온라인 간편결제 서비스 페이팔로 대금을 지급하는 ‘쿨 거래’의 현장. 요즘 ‘핫’한 아트토이의 세계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아트토이가 요즘 젊은 세대가 사랑하는 미술 장르로 주목받고 있다. ‘키덜트(Kid+Adult)족’이 열광하는 수집 대상으로 잘 알려진 피규어가 애니메이션 및 영화 캐릭터 등 기존 지식재산권(IP)을 3D 형태로 제작한 매스아트라면, 아트토이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작가가 직접 콘셉트를 잡고 조형성을 더해 만들어내는 작품으로 ‘디자이너 토이’라고도 부른다.
취향소비를 제대로 ‘과시’할 수 있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아트토이. 에이티 에잇 작가, 토담 작가, 제이코크 작가, 노마루 작가의 작품(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반브레이크 제공
토베이 작가는 아트토이의 매력으로 “작가가 나(구매자)를 위해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을 꼽았다.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핸드메이드 작품의 경우 생산단가가 높다 보니 미리 만들어두는 것이 아니라 사전주문을 받은 뒤 제작에 들어간다. 작가와 구매자가 직접 소통하는 사례가 많아 작가에 따라 특별 요청이 반영되기도 한다. 토베이 작가는 “구매자가 원하는 위치에 작가 사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귀띔했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아트토이는 2001년 일본에서 탄생한 베어브릭(BE@RBRICK)을 들 수 있다. 토베이 작가는 “기본 곰돌이 형태를 플랫폼 삼아 페인팅하거나 변형하는 식으로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나오는 장르”라서 베이브릭은 아트토이 중에서도 ‘플랫폼 토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샤넬, 구찌 등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변주된 베어브릭은 국내 인기 음악인들의 뮤직비디오나 SNS에 등장하면서 대중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힙합 뮤지션들은 아트토이의 대표적인 컬렉터다.
아트토이 중 국내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베어브릭. 곰 모양 피규어를 기반으로 작가 및 브랜드에 따라 다채롭게 베리에이션할 수 있는 플랫폼 토이로도 불린다. 공식홈페이지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토이 페어가 열리는 중국은 아트토이의 가장 큰 시장이다. 중국 최대 아트토이 브랜드인 팝마트 조사 결과, 아트토이 페어 개최 원년인 2015년부터 3년 사이 아트토이 컬렉터가 3.3배 증가했다. 어반&스트리트 아트페어를 표방한 어반브레이크의 ‘아트토이 특별전’을 담당한 곽여름 기획자는 “홍콩과 중국에서 부상한 아트토이 열풍은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일대로 퍼지는 추세”라며 “최근 아트토이 페어에서는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의 작품도 줄을 서서 살 정도”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요즘 아트 분야의 소비 주체는 1990~2000년대생이 많다. 자신의 취향 소비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아트토이 장르가 적합하기 때문일 것”
중국 최대 온라인쇼핑몰 티몰에 따르면 피규어 및 아트토이 최대 소비층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다. 국내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곽여름 기획자는 “요즘 아트 분야의 소비 주체는 1990~2000년대생이 많다”며 “자신의 취향 소비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으로 아트토이 장르가 적합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트토이에는 작가의 세계관과 스토리가 담긴 만큼 작품의 개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덥수룩한 수염, 반쯤 감긴 듯한 선한 눈에 귀여운 체형을 가진 아트토이 ‘The P’는 토베이 작가의 시그니처로 통한다. 의상이나 자세를 달리해도 누구나 ‘토베이표’ 작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 점이 회화와 달리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는 포인트다. 토베이 작가는 “최근 일러스트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했듯, 심오한 조각 작품보다 같은 주제라도 비교적 쉽게 풀어낸 아트토이가 사랑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아트토이 작가층이 두터워지며 다양한 분위기의 작품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원손 작가, 레이디 한나 작가, 최은별 작가, 김태우 작가의 작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반브레이크 제공
조각 작품보다 “리즈너블한” 가격도 집 안에 들일 수 있는 조형물의 미덕이 됐다. 작가가 수작업으로 만드는 핸드메이드 아트토이는 보통 3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공장에서 생산되는 양산형 작품은 상대적으로 저렴해 10만원대도 있다. 소재는 플라스틱의 일종인 공업용 레진을 사용하는데, 그외 어떤 재료를 쓰느냐에 따라 가격대가 달라진다. 미술 애호가로 알려진 대만 출신 배우 주걸륜의 아트토이 작가로도 유명한 미국 출신 팝아트 작가 카우스(KAWS)가 디올과 협업한 아트토이는 5만위안(약 970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2018년 롯데 유통사업본부가 세로 28m에 달하는 카우스의 작품을 석촌호수에 띄운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며 당시 19만8000원에 판매한 아트토이도 큰 매출을 올렸다. 카우스 작가의 경우 양산형 작품도 100만원대를 오르내린다. 한정판 운동화에 거금을 쓰는 요즘 세대에게는 놀랄 만한 소비도 아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마련된 어반브레이크 아트토이 및 회화, 판화, 포스터를 만나볼 수 있는 프리뷰 전시 및 팝업스토어 중 토베이 작가의 작품 섹션.
예술 작품도 이제 지나가다 눈에 들면 구입하는 아이템이 됐다. 어반브레이크는 오는 21일 개막을 앞두고 7일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에 아트토이 및 회화, 판화, 포스터를 만나볼 수 있는 프리뷰 전시 및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백화점 방문객들은 아트토이를 촬영하거나 작품 이미지를 프린트한 티셔츠 등을 자유롭게 둘러봤다. 최근 백화점에서 전시 및 아트페어가 속속 열리고 있다. 행사 이름 앞에는 ‘MZ세대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단골로 붙는다. 곽여름 기획자는 “백화점에서 과연 구매가 이뤄질까 싶었는데 지나가다 작가 정보를 물어보거나 컬렉터가 아님에도 마음에 든다며 결제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음식 고르고 옷 사듯이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소비문화가 생긴 듯하다”고 말했다.
토베이 작가의 ‘The P’. 수작업으로 제작된 이 아트토이는 데이지 꽃도 분리되고 모자도 벗겨지고 자석이 내장된 에어팟은 귀에 착 붙기도 한다. 장회정 기자
미켈란젤로가 지금 시대를 산다면 피에타의 스케치부터 조각 과정을 타입랩스 압축 영상으로 만든 뒤, 유튜브로 공개했을까. 토베이 작가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스케치부터 몰딩, 브러싱, 테이핑 등 제작 과정과 작가의 기획 의도를 담은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아트토이의 모자를 벗겼다 씌울 수 있고 자석이 내장된 에어팟을 귀에 착 붙이는 장면은 어떤 홈쇼핑 영상보다도 강렬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킨다.
아트토이 15점을 소장한 곽여름 기획자는 “아트토이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2점씩 산다”고 말했다. 한 점은 손때를 묻혀가며 ‘토이’처럼 가지고 놀고, 한 점은 때가 타지 않게 고이 보관하는 용도다. 아트토이도 작품당 10~20점 한정 제작되며 판화처럼 고유번호가 붙는다.
어반브레이크의 아트토이특별전을 추진한 곽여름 기획자(왼쪽)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 토베이 작가.
곽여름 기획자는 “코로나19가 시작되고 메타버스, NFT(대체불가토큰) 시대가 열리면서 3D 캐릭터 시장이 커졌는데 이 영향으로 3D로 제작되는 아트토이 시장도 확대됐다”고 전했다. 불과 1~2년 사이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투자 목적으로 진입하는 이들이 증가했다. 가상통화 시장이 주춤하면서 아트토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신인 발굴에 나서는 컬렉터도 생겼다. 곽 기획자는 “현장 판매만 가능한 한 아트페어에서 아트토이 구매 리스트를 적어온 고객으로부터 (바로 찾아갈 수 있게) 부스 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고도 했다. 그야말로 ‘오픈런’의 긴장감이 감지된다.
아트토이는 캐릭터가 뜨면 패션을 비롯한 가구, 식품, 문구 등 각종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무한한 확장성을 갖는다. 토베이 작가는 코오롱의 남성복 브랜드 커스텀멜로우와의 협업으로 슈트 구매 고객에게 증정하는 한정판 아트토이를 제작하기도 했다. 홍콩 출신 케니 웡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몰리’는 중화권에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대표적인 아트토이 캐릭터다. 2006년 이래 15개가 넘는 시리즈로 출시되며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반브레이크에서 특별전을 갖는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멧 곤덱의 아트토이 작품 ‘heart in a case’. 작가는 ‘아트워크’라 명명했다. 어반브레이크 제공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어반브레이크에는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멧 곤덱의 특별전이 열린다. 미키마우스, 핑크팬더, 심슨 등 익숙한 캐릭터를 해체하거나 비트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아트워크 작품을 만날 기회로 기대를 모은다. 또한 제이코크, 에이원 등의 작가가 소속된 스테레오그램 소속 아티스트 7명과 토베이, 김태우, 최은별, 노마루, 이자까 작가 등 9명이 참여하는 국내 아트토이 작가 특별전도 마련된다. 곽여름 기획자는 “국내 아트토이 작가들이 글로벌 마켓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인큐베이터 성격을 띠고 있다”며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별로 없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하고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동안 아트토이 애호가들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구매대행이나 직구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반브레이크는 국내 작가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해 아트토이 거래를 위한 자체 플랫폼 개설 계획도 갖고 있다.
데뷔 7년차에 접어드는 토베이 작가는 어반브레이크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격으로 참여해 아트토이 영역의 큐레이션을 담당했다. 오프라인 클래스를 열어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며 아트토이 장르의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는 그는 “내 작품을 아무도 안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보고 있었다”며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만 있으면 ‘열린’ 세상에서 충분히 작품활동을 할 수 있다"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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